[주말매거진] 로또 407억 터트린 춘천 가판점 그후  (조선일보, 2003. 4. 24.)

 

지난 12일 국내 복권사상 최대의 당첨금(407억원)이 춘천에 살던 경찰관에게 안겨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춘천 로또 가판점의 매상이 평소의 2~3배로 부쩍 늘어났다. 특히 407억원의 대박이 터진 춘천시 중앙로2가 국민은행 지점 앞의 가판점은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제19회차 로또복권 1등 407억원 당첨’이라고 적힌 입간판을 사방에 두루 써 붙인 1평 남짓한 크기의 이 알루미늄 섀시 가판점은 요즘 대목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매상이 많이 늘었죠?”

“그런 걸 왜 묻죠? 어디에서 오셨어요?” 여주인은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1등 당첨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까?”

“아뇨. 1등 당첨과 관련해선 지난주 월요일, 국민은행 로또본부로부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은 게 다예요”

“소문에는 당첨자가 정복의경을 시켜서 복권을 구입했다고 하는데….”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이에요.”

“요즘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로또복권을 많이 사나요?”

“30~40대 직장인들이 압도적이죠.”

“간혹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도 옵니까?”

“오늘도 여럿이 왔댔어요. 40대의 한 남자는 인천에서 왔다며 명함을 건네주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아줌마하고 이 터하고 딱 맞네요’라고 말하곤 3만원어치를 사갔고요. 어떤 아줌마는 청주에서 버스 타고 왔다면서 이곳에서 또 1등 당첨금이 나오는 꿈을 꿔서 물어물어 찾아왔노라며 1만원어치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올해 51세이며 성이 김이라고만 밝힌 여주인은 “올해가 복권장사 17년째인데, 요즘처럼 바빠 보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어떤 번호를 특히 많이 고르는 것 같습니까?”

“그런 데는 관심없어요. 요즘은 자동선택을 많이 합디다.”

“왜 그렇죠?”

“지난번 당첨자가 자동선택으로 됐기 때문이겠죠.” 그러면서 여주인은 “내가 남들 부자 만드는 팔자를 타고 났대요”라고 말했다.

“이번 말고 또 언제 부자를 만든 적이 있었나요?”

“지난 89년 2월과 9월에도 주택복권 1등 당첨자가 우리집에서 나왔어요.” 여주인은 서슴없이 답했다.

(춘천=김창우기자 cw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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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매거진]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불행해진다?”  (조선일보, 2003. 4.24.)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복권을 산다. 또 복권을 산 사람 치고 1등 당첨됐을 때의 짜릿한 순간을 상상해보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큰 집과 좋은 차를 사고, 못 사는 친척과 어려운 이웃에게 돈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꿈도 꿔본다.

하지만 우리보다 복권의 역사가 수십년 앞서는 미국이나 영국 등지의 당첨자들을 살펴보면, 역설적으로 당첨 후 인생은 행복보다는 불행한 경우가 더 많았다. 자살·이혼·마약·알콜중독·파산·감옥행…. 당첨 이후 삶에는 갖가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당첨자에게 닥쳐오기 쉬운 첫 번째 불행은 평소 절친했던 친구나 가족들과 멀어지는 것이다. 상호 불신과 불만 속에서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급기야 당첨금을 둘러싼 재산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마이클 클린지비엘씨는 지난 97년 복권에 당첨된 뒤 어머니와의 연이 끊어졌다. 당첨 직후 “복권을 사는 데 매달 20달러씩을 보탠 만큼 당첨금 220만달러 중 내 몫을 달라”는 어머니와의 분쟁이 소송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2년 뒤인 99년 아들이 어머니에게 5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합의로 소송은 끝났지만 수년 동안 대화 한마디도 없을 정도로 모자관계는 완전히 금이 가버렸다.

미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주부 버니스 헤슬롭씨도 지난 95년 복권으로 2850만달러의 거액을 거머쥐었지만, 남편과 갈라서고 말았다. 남편은 당첨 직후 거액을 나눠 달라는 소송을 냈고, 지난 2000년 6년을 끌어온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당첨금 일부를 나눠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그 사이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부부는 합의 직후 이혼했다.

매달 일정액을 추렴해 함께 복권을 사왔던 미국 애틀랜타 공항의 택시 운전사들은 2001년 4900만달러의 복권에 당첨되면서 다정했던 동료가 원수가 됐다. 복권 당첨금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나 서로 다른 3건의 소송이 벌어진 탓이었다.

하버드대학 대니얼 길버트 교수(심리학)는 “당첨은 좋은 차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신뢰, 가족, 우정 같은 인간적 가치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평소 유머감각 등 다른 이유로 당첨자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당첨자가 자기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갈등이 생겨나 결국 관계가 파탄에 이른다는 것이다.

극도의 신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술이나 마약을 탐닉하는 이들도 있다. 90년대 초 4530만달러의 복권에 당첨됐던 톰 티히(미 캘리포니아주)씨 가족은 당첨 직후부터 가까운 쇼핑센터에 나갈 때도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다. 신원이 알려지면서 얼굴도 모르는 친척과, 돈 때문에 절망에 빠진 낯모르는 사람들이 줄지어 집을 찾아왔고, “돈을 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전화도 수시로 걸려왔기 때문이다. 티히씨는 이후 무기를 소지한 채 생활하고 있고, 배달돼 오는 우편물도 폭발물이 있는지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부가 얼마나 사람을 추악하게 하는지를 당첨 이후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작년 1월에는 영국 버밍엄시에서 복권으로 백만장자가 된 필 키천(58)씨가 자택 소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도 있었다. 99년 목수일을 하다 180만파운드의 복권에 당첨된 그는 당첨 이후 거의 집밖에 나오지 않은 채 술에 탐닉해온 알콜중독자로, 기관지성 폐렴으로 홀로 숨져간 사실이 영국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주체할 수 없는 소비 욕구로 인해 수년 내에 빚더미에 오르는 당첨자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기 혐의로 FBI의 1급 수배 명단에 오른 당첨자도 있었다고 한다.

뉴욕 로스쿨에서 파산문제를 가르치고 있는 카렌 그로스 교수는 “갑작스럽게 생긴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낭비벽에 빠져들면 천문학적인 당첨금도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시기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복권 당첨자의 3분의 1 정도가 파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최유식기자 finder@chosun.com )

 

[주말매거진] 복권 당첨자 행동수칙  (2003. 4.24.)

복권 당첨금이 수백억원대로 늘어나면서 최근 인터넷에는 당첨자들의 행동 요령을 담은 ‘당첨자 행동수칙’ 3~4건이 떠돌고 있다. 내용은 대체로 당첨 이후 신분 노출을 최대한 피하는 대책이 담겨있다.

‘1000억원은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로 시작하는 한 행동수칙에는 ▲당첨 후 한두 달 뒤 당첨금을 찾고 ▲주관사인 국민은행을 ‘협박’해 기자회견을 막으며 ▲즉시 휴대전화 번호나 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최소 한 달간 해외로 나가 있을 것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토요일에 당첨이 확정되는 것에 맞춰 요일별 수칙을 제시한 것도 있다. 이 수칙에 따르면 주말에는 당첨 확인 후 가족회의를 하고, 월요일에는 병가 등을 핑계로 결근한 후 여권과 비자를 신청한다. 화요일에는 당첨금 수령하는 곳을 답사하고 수요일에는 공중전화로 국민은행에 전화를 걸어 “보안을 어기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둔다. 금요일에는 동행 1인과 함께 국민은행을 불시에 방문해 작전하듯 당첨금을 수령하고 잠적하는 것으로 절차는 마무리된다.

실제로 19회차 로또복권에서 사상 최고인 407억원에 당첨된 P씨(39)도 이 수칙과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찾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P씨는 월요일인 지난 14일 국민은행에 전화를 걸어 “목요일쯤 찾으러 가겠다”고 했지만 화요일(15일)에 불시에 돈을 찾아갔고, 신분도 경찰관이 아닌 회사원으로 속였다고 국민은행측은 밝혔다.

(최유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