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시시각각] 미안하다 사기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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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한 신문사 입사시험에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뜻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한 응시자의 답안이 걸작이었다. “몸은 죽어 흙이 되어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답안지를 내는 순간까지 정답이라 믿었을 그는 불행히도(신문사로서는 다행스럽게)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할 말이 있을 법도 하다. ‘불사이군(不事二君)’과 헛갈리기는 했지만 신토불이란 게 사전에 있는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를 중국어로 직역하면 “한 사람이 두 지방에서 태어날 수 없다”는 뜻이 된단다. 그 말이 “나서 자란 땅의 농산물이 몸에 맞는다”, 더 나아가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미언대의(微言大義)’를 가졌을 줄은 중국인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는 거다. 불교 용어란 주장도 가소롭다. “생명 주체(正報)와 그 주위 환경(依報)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의정불이(依正不二)’를 말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우주와 생명은 하나”라는 불교 철학이지 국산 배추가 몸에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신토불이는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에 앞서 국산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장 개방 압력에 밀어닥칠 외국 농산물을 신토불이라는 주문으로 막아내고자 했던 거다. 만들고 보니 최고의 광고 카피였다. 절반의 애국심과 절반의 웰빙 바람을 타고 그야말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가 됐다. 우리 농산물은 ‘건강식’의 다른 이름이 됐고 미국 것은 ‘정크푸드(Junk Food)’, 중국 것은 ‘농약 범벅’으로 통했다.

 신토불이는 우리 땅과 별 상관 없는 공산품에까지 전방위로 전선을 확대했다. ‘국산’과 동의어가 됐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였다. 자원은 없고 인구는 많은 나라가 국제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국산차를 사주는 길밖에 없다는 집단 주술이 먹혔다. 큰 배꼽 세금 탓에 수입차는 터무니없이 비쌌을 뿐 아니라 타는 것 자체가 죄악이요 매국으로 손가락질받았다. 물론 도움이 됐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데도 그 힘이 컸다. 하지만 국민은 고혈이 말랐다. 국제시세보다 몇 배나 비싼 값으로 국산 쌀과 한우 고기를 먹어야 했고 성능 좋은 외제차는커녕 국산차도 더 비싼 돈을 내고 사야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의 도래는 신토불이 주문에 종언을 고했다. 칠레산 포도, 호주산 쇠고기를 먹어 보니 맛만 좋았다. 알고 보니 신토불이는 사기였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됐다. 우리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게 고추지만 그 원산지는 아메리카고, 우리가 고추를 먹은 역사는 300년이 채 안 된다. 감자·고구마·옥수수·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신토불이로 말하자면 재미·재일 교포들은 모두 시름시름 앓아야 한다. 그런데도 잘 먹고 잘살기만 한다. 따지고 보면 농약은 중국산보다 국산 고사리에 더 많다. 중국에선 비싼 농약을 함부로 쓸 형편이 못 된다. 한우도 그렇다. 한국 땅에서 태어났다지만 항생제·방부제 섞인 수입 사료를 먹고 큰다. 병 걸리지 말라고 항생제 주사도 수시로 맞는다. 한우가 뭔지 국내산이 뭔지 의미조차 애매하고 모호하다.

 신토불이가 명을 다하면서 자동차도 된서리를 맞았다. 명분 없는 파업에 진저리를 낸 소비자들이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한다.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수입차를 타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외제차는 이제 자기 표현일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값싸고 질 좋은 걸 누가 마다하겠나. 거기에 쇠똥을 던진 이들은 쇠똥을 주워 모으기 전에 다른 고민을 했어야 했다. 이미 세계적 명품이 된 일본산 와규(和牛)처럼 철저한 품질 관리로 한우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한우 값은 올라도 축산 농가의 한숨은 사라지지 않는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일들 말이다. 더 이상 신토불이로 소비자들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파는 것만큼이나 나쁜 짓이다. 그것은 사기다.


이훈범 논설위원

2007.07.16 19:02 입력 / 2007.07.16 22:2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