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에비타를 위해 우나
중앙일보 중앙시평, 2001. 12. 24.
 

"아르헨티나여, 나 때문에 울지 말아요. 나는 한번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어요. 때로는 어렵고, 험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약속은 늘 지켰어요. 나를 멀리 하지 마세요." 에비타의 애타는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르헨티나는 또 다시 깊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세계 7대 경제대국

에비타 페론은 가난한 사생아로 온갖 사회적 멸시 속에서도'국모'로 등극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획기적 개선으로 1940년대 아르헨티나를 열광시켰던 신화적 인물이다.

내년이면 에비타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지만, 아직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묘지에는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지 그녀의 미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에비타의 복지정책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시각만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정서가 아직도 살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정서가 아르헨티나를 몰락시킨 원인이 되었다면, 누가 에비타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70년대는 물론 80년대에도 연 6천%의 인플레이션과 외채 위기를 겪었으며, 최근까지도 아슬아슬한 벼랑 위를 맴돌아 왔던 것이다. 한때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국토로 세계 7대 경제대국에 속했던 아르헨티나가 지금은 위기를 상징하는 나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왜 이러한 혼미가 아르헨티나에만 반복되는 것일까. 위기 때마다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처방도 그렇게 많았는데, 몇년이 지나면 또 다시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오히려 매우 간단하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정치적 불안정, 과다한 외채의존과 구조조정의 실패 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요인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아르헨티나의 비극의 배경에는 에비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국민들의 정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선진국보다 더 많은 휴가를 즐기고, 일하지 않아도 수준 높은 연금과 복지,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로 전국민을 편안하게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인기에 영합했던 정책의 반복으로 구조조정은 실패했고, 과다한 복지지출로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여왔다.

실제 아르헨티나에서는 의료비용과 대학교육비까지 무료이며, 선진국보다 높은 실직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에비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복지정책의 근간을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관성처럼 뿌리깊게 박혀 있는 국민의 정서를 어느 정권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아르헨티나여, 나를 멀리 하지 말라"는 호소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누가 이 비용을 다 감당하겠는가. 재정적자는 통화남발과 외채로 메워지고, 인플레이션은 적자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거듭되는 악순환으로 반세기 이상을 위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도 외채규모가 1천5백50억달러로 국내총생산의 46%에 육박하고, 연간 재정의 세배에 달한다. 기업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사회보장과 근로자 복지제도로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은 날로 저하되고 있을 뿐이다.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공기업의 민영화도 실패로 끝이 났다. 위기 때마다 자본의 해외유출도 심각하다. 과연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지나친 후생.복지도 문제

물론 형평을 개선하고 근로자의 후생을 높이기 위한 복지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생산성을 무시한 과다한 요구는 결국 경쟁력을 저하시켜 고용마저 위협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한다.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될수록 인기에 영합하는 복지와 후생정책의 등장도 경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개혁과 구조조정은 오히려 단기적인 저항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경제적 선택이 인기와 표에 좌우되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국민정서를 뛰어넘는 과감한 정책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다행히 아직은 외환위기를 잘 극복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국민정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가. 행여 우리에게도 에비타의 환상이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위기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鄭甲泳(연세대교수 ·경제학)

 


아르헨티나의 ‘냄비혁명’ ....... 이강원

조선일보 시론, 2001. 12. 25.

아직도 냄비 두드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바로 하루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여름 밤 거리를 뒤흔들던 소리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냄비·프라이팬·국자·심지어는 냄비뚜껑까지 들고 나와 두드려대던 소리,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내지른 비명소리였다. 그 비명소리가 하루 만에 대통령의 무릎을 꿇게 해 임기의 반을 남겨놓은 데 라 루아 대통령을 2년10일 만에 물러나게 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다섯 번째 불명예 퇴임 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4년이란 긴 세월을 경제위기의 줄타기를 하면서 누적된 우리의 분노와 좌절감을 정치인들은 짐작이나 할까요? 아이는 네 명이나 되는데 직장은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정말 눈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수퍼마켓을 약탈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항공사 직원이었던 호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두드렸다.

이렇게 부글부글 끓어올라온 감정이 폭발할 것이란 것은 오래 전부터 감지되었다. 특히 10월 상·하원 선거에서 야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가장 많은 표는 30%가 넘는 ‘거부표’였다.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던진 등골이 써늘한 심판이었다. 그리고 12월 초에 발표된, 주 250달러로 한정한 은행예금 일부동결은 국민의 얼어불은 마음에 꽂은 비수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늘어난 것 좀 열거해 볼까요? 빚과 실업자, 극빈자, 점쟁이와 정신과 의사, 그리고 푹 절은 한숨입니다. 50년대까지 영국을 넘겨보던 나라가 어찌 이리 되었는지 울화가 치밀어서 저도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어요.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이니 이는 바로 민중혁명입니다.” 경제학자 로페스까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입을 꽉 다문 채 몇 시간씩 은행과 직업소개소 앞에 늘어선 모습들. 이제 익숙한 이런 광경에서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그대로 느껴져 으스스할 정도였다. 지휘자와 조직력 없이도 일사불란하게 냄비를 두드리고 국가를 합창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마지막에 다다른 민심의 정확한 표출이었다. 세계 곳곳의 이민자로 이루어진 섞어찌개 같은 나라지만 초장에는 너무 잘나가 영국과 어깨를 겨루던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사막에서 빙하, 열대림, 무한한 광물질에 석유까지 품고 있어서 신이 어찌 한 나라에 이토록 많은 것을 주셨을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신은 시련도 함께 주셨다. 20세기 초 황금빛 영광과 함께 자라난 부정부패의 씨앗이다.

“이 도시를 남미의 파리라고 부르지요? 실제로 기돈 크레머, 요요 마, 후안 미로 등 많은 예술가들의 혼을 빼앗은 곳이지요. 그러나 이제 지난날의 영광은 되돌아보기도 싫습니다. 아르헨티나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져있는 부정부패를 도려내지 않는 한 이런 영광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사람(정치가)이 바뀔수록 환부는 너무 넓고 깊어졌으니 들어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우울하고 슬퍼요.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이 더 걱정입니다. 뚜껑만 바꿔 덮었지 그 밥에 그 나물이니까요.” 오페라 가수 올가는 말 도중에 한숨을 말보다 더 길게 섞는다.

아직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냄비 시위로 사망자와 부상자도 생겼다. 1300억달러 외채의 동아줄은 점점 목을 조여오고 3D(Default, Devaluation, Dollarization) 중 적어도 두 개는 거부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구는 속이 텅 빈 큰배로 이 나라를 비유한다. 이제 이 배는 새로운 선장까지 찾아야 한다.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혼란을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아르헨티나는 온몸으로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 시인·아르헨티나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