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에 착공했던 소양강 다목적댐은 원래 1957년에 구상되었던 것이 10년만에 정부의 수자원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소양강 댐은 재원의 일부를 대일 청구권(對日請求權) 자금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었고 일본 공영이 설계에서 기술, 용역까지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일본 공영의 설계는 콘크리트 중력 댐이었다.

콘크리트 중력댐이라……. 철근, 시멘트 등 기초 자재에서부터 우리 나라 생산시설로 그 같 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설사 자재의 수급 능력이 있다 해 도 그 산간벽지까지의 운반에는 엄청난 돈을 퍼부어야 했다. 설계비에 기초 자재비, 그리고 기술 용역비까지 일본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일본 공영 설계대로 콘크리트 중력댐을 건 설하면 막대한 돈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어, 콘크리트댐으로 설계한 그들의 저 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순간, 나는 소양강댐이 들어설 자리 주변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모래와 자갈을 떠올렸다. 권기태 상무 등을 즉각 현장으로 파견했다. 돌아온 이들의 보고가 내 생각과 일치했다. 콘크리트 대신 주위의 모래, 자갈을 이용해 사력댐으로 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결론이었다. 나는 서둘러 당국에 사력댐으로 시공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 때까지 정부가 발주한 공사에 건설업자가 감히 대안이라는 걸 내본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공사 현장에서도 대개 건설부에서 파견된 기술감독의 지시대로 고분고분 일이나 하는 것이 관에 약한 건설업자의 상례였다.

 

더욱이 댐 건설로는 세계가 알아주는 일본 공영의 설계안을 젖히고 내놓은 대안이란 언감 생심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짓이었다. 게다가 기본 계획이 수자원개발공사에서 심사를 끝내고 건설부 승인까지 난, 확정된 공사 설계였었다. 이런 판국에 일개 청부업자 현대건설이 대안을 제시한 것은 당시 건설업계 풍토로는 죽으려고 호랑이 콧구멍을 쑤신 격이었다.

 

우선 관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무모함이었고 세계 굴지의 일본공영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우리의 대안은 예상대로 너무도 당연하게 주무관서와 일본 공영의 맹렬한 반발에 부딪쳤고 온갖 빈축을 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우리의 판단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신념이 뚜렷하니까 삿대질도 빈축도 상관없었다. 절대로 그대로 물 러설 수 없었다. 삼자 연석회의를 제의했다. 우리 쪽에서 나와 전갑원 기사가, 일본 공영에 서는 동경대 출신 하시모토 부사장이, 건설부와 수자원개발공사에서는 내노라하는 기술자들 이 참석했다. 나는 끈기있게 우리 조사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설득했으나, "정사장, 당신이 댐 에 대해서 뭘 안다 그러시오. 어디서 댐에 대한 공부를 했소. 우리 일본 공영은 동경대 출신 집단이며 세계 모든 댐을 설계한 회사인데 소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사람이 사력댐으로 고치면 지방 상수도 10개의 공사를 할 수 있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느니 무슨 그런 쓸 데 없는 소릴 해서 소란스럽게 만드시오." 하는 역시 동경대 출신 사토 사장의 모욕적인 면박만 당하고 삼자회담은 소득없이 끝났다.

 

우리가 내놓았던 사력댐 대안은 2차대전 이후 높이 1백 미터 이상의 댐은 콘크리트 중력식 댐보다는 사력으로 만드는 중력식 댐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당시 세계적인 추세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이전에 프랑스가 설계한 태국의 파숀댐 공사에 입찰하면서 얻은 정보였다.

 

나는 그들의 말대로 동경대는 커녕 전문학교도 못 나온 소학교 출신인 것이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고, 우리 직원들은 서울공대의 까마득한 선배들인 관리 앞이라서 아무 말 못하고, 별도리 없이 체념할 수밖에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체념한 사력댐 대안은 나의 신념을 돕자는 하늘의 지원이 있었는지 우리도 모르는 동안 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설부장관은 아마도 내가 직접 박대통령에게 사력댐 대안을 내놓아 적은 예산으로 댐을 만들고 지방상수도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대통령이 흔들릴까 봐 염려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미리 방패막이로 우리 현대의 사력댐 대안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하면서 "현대 정 사장 말대로 하면 큰일납니다. 댐을 만드는 도중에 물이 반쯤 찼을 때 예측 못한 큰 비라도 와서 댐이 무너지면 서울시가 다 물에 잠겨 정권이 흔들립니다."했던 모양이다.

이 말을 들은 박대통령은 '그렇다면, 댐이 반쯤 찼을 때 무너져도 서울이 물바다가 될 것 같으면 높이 1백 26미터의 콘크리크댐이 완공돼 물이 찼을 때 만약 이북에서 폭격이라도 하면 그 때는 끝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박대통령은 포병 장교 출신이었다. 전시체제 생각을 항상 하고 있던 박대통령은 만약의 경우 폭격을 맞아도 한 번 들썩하고 조금 패일 뿐 댐이 파괴될 걱정이 없는 사력댐 대안이 신선했을 것이다. 박대통령이 공사 도중의 예기치 않은 홍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서 사력댐으로의 전환 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건설부와 일본공영은 우리가 애초 건설부에 제출했던 자료들을 가지고 사력댐으로의 전환 연구 검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두어 달 후 어느 날. 과음으로 위경련이 나 세브란스병원에 들어간 김에 위 검사를 하고 입원해 있는데 일본 공영의 구보다 회장과 사장이 병원으로 오겠다는 전갈이 왔다. 곧 나갈 테니 나가서 만나자고 해서 퇴원 후에 만났다. 구보다 회장은 일본의 한국 통치 시절 수풍 댐 을 만든 댐의 권위자며 당시 팔순이 넘은 사람이었다. 그 팔순이 넘은 구보다 회장이 나에게 90도 각도 경례로 절을 했다.

 

"우리 사장이 콘크리트댐의 전문가지 사력댐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콘크리트댐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선입관으로 콘크리트댐 설계를 한 것입니다. 정사장의 설계대로 우리가 현장의 모든 조건을 다 조사했는데 암반이 취약해 콘크리트 댐보다 오히려 사력댐이 낫겠습니다. 또 정사장 말씀대로 상수도 열 개까지는 안 되겠지만 경비가 많이 절약되는 것도 사실입니 다." 이런 곡절을 겪고 소양강 다목적댐은 당초 예산의 30퍼센트를 줄여 사력댐으로 설계를 바꿔 공사에 들어갔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가면서 나가면 된다. 댐이 완성되고 난 후 건설부 관계자가 어느 TV에 나와 일본 공영의 콘크리트댐 설계에 건설부가 사력댐의 대안 을 내놓아 변경, 완성했다는 인터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자료 : 박정희대통령 인터넷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