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김유정문학촌

 

 square14_silver.gif 현황

구       분

수량

국가지정

보물

3

중요민속자료

1

강원도지정

유형

4

기념물

11

문화재자료

8

27

 

square14_silver.gif 문화재별 내역    ※중민:중요민속자료,  지유:지방유형문화재, 지기:지방기념물, 문자:문화재자료

문 화 재 명

종 별

소  재   지

지정일

제작 또는 조성연대

幢竿支柱(당간지주)

보물 76호

근화동 793-1

'63. 1. 21.

고려시대

七層石塔(칠층석탑)

   "    77호

소양로 2가 162-2

'63. 1. 21.

       "

廻轉門(회전문)

   "   164호

북산면 청평1리 189-2

'63. 1. 21,

조선시대

청풍부원군 상여

중민 120호

서면 안보1리 산 25-1

'82. 8. 7.

       "

威鳳門(위봉문)

지유  1호

중앙로 1가 9

'71. 12. 16.

조선 仁祖 24년

朝陽樓(조양루)

   "     2호

우두동 산5

'71. 12. 16.

       "

서상리 삼층석탑

   "   16호

서면 서상1리 247

'71. 12. 16.

통일신라시대

春川鄕校(춘천향교)

   "   98호

교동 27-1

'85. 1. 17.

조선시대

穴居遺址(혈거유지)

지기 1호

후평동 671-1

'71. 12. 16.

신석기시대

천전리 지석묘군

   "    4호

신북읍 천전2리 685-7

'71. 12. 16.

청동기시대

三岳山(삼악산)

   "   16호

서면 덕두원리 산

'73. 7. 31.

        

積石塚(적석총)

   "   19호

중도동 598-2(호반동)

'76. 6. 17.

초기 철기시대

청풍부원군 묘역

   "   20호

서면 안보1리 산 25-1

'76. 6. 17.

조선 肅宗(1675)

신장절공 묘역

   "   21호

서면 방동1리 산 816-1

'76. 6. 17.

고려시대(927)

鳳儀山城(봉의산성)

   "   26호

소양로 1가 산 1-1

'79. 5. 30.

고려시대

만천리 백로·왜가리번식지

   "  44호

동면 만천2리 416-1

'82. 11. 3.

1940년대

증리 고분군

   "  45호

신동면 증2리 산 96-9

'82. 11. 3.

삼국시대

신매리 석실고분

   "  46호

서면 신매3리 177-14

'82. 11. 3.

고구려시대

淸平寺址(청평사지)

   "  55호

북산면 청평1리 189-2

'84. 12. 28.

고려시대

昭陽亭(소양정)

문자 1호

소양로 1가 산1

'84. 6. 2.

삼국시대

청평사 삼층석탑

   "   8호

북산면 청평1리 189-2

'84. 6. 2.

고려시대

월송리 삼층석탑

   "   9호

서면 월송2리 666-1

'84. 6. 2.

      "

삼악산성지

   "  50호

서면 덕두원리

'84. 6. 2.

신라 또는 삼한시대

최재근 전통가옥

   "  65호

신동면 정족1리 907-2

'85. 1. 17.

1917년도

민성기 전통가옥

   "  66호

동면 장학1리 70

'85. 1. 17.

1925년도

김정은 전통가옥

   "  68호

신동면 정족1리 643

'85. 1. 17.

1917년도

방동리 고구려고분

   " 106호

서면 방동1리 산 90

'85. 9. 13.

고구려 후기

 

square14_silver.gif 설명

square14_red.gif 幢竿支柱(당간지주)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불교의식 행사시에 불기(佛旗)등을 게양하는 깃대의 일종으로 대체로 큰 규모의 사찰에서 볼 수있는 유적이다. 마주보고 서있는 돌기둥을 지주라하고 그 사이에 철, 목대 등으로 세운 기둥을 당간이라 부른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곳 당간지주는 아쉽게도 현재 당간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절(寺刹)도 없는 빈터를 지키고 있다. 높이 3.5m의 화강암 지주는 특별한 조각이나 장식은 없으며 지주상단 바깥쪽으로 사분원을 그리며 마치 바나나모양(弧線)으로 처리하여 부드러움을 표현하였다. 양 지주 사이 바닥에 녹물이 밴 당간 받침돌(竿臺石)에 연꽃잎과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당간지주

 

square14_red.gif 七層石塔(칠층석탑)

   여러 층을 높다랗게 쌓는 고려시대의 특징을 간직한 다층석탑이다. 현재 지면에서부터 높이는 4m에 불과하지만 땅속에 묻혀있는 기단부를 지상으로 올리고 없어진 상단부분의 상륜부를 복원한다면 6m에 달하는 큰 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이 어느 사찰에 속했던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조선 인조(1623∼1649)때 충원현감을 지냈던 유정립(柳鼎立)이 낙향하여 이 탑 부근에 집터를 닦던 중 땅 속에서 충원사(沖圓寺)란 글씨가 있는 물건(佛器)를 발견하였다는 기록으로볼 때 이 사찰에 속했던 탑으로 여겨지며. 일명 "충원사 칠층석탑'으로도 불린다. 탑의 손상이 심한 것은 한국전쟁후 이 일대에 판자집촌이 형성되었었는데 불의의 화재가 발생되어 진화를 위해 소방차가 물을 뿌리자 열에 달아 있던 석탑의 부재가 갈라지면서 훼손이 되었다고 한다.

 

 

       

▲칠층석탑

 

 square14_red.gif 廻轉門(회전문)

   973년 백암선원(白岩禪院)으로 창건된 천년사찰 청평사의 회전문은 조선 명종(1546∼1567)대에 세워진 목조 건축물이다. 회전문은 청평사의 사천왕문에 해당되는 대표적 건축물로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중앙은 넓게 잡아 통로로 사용하고 좌우에는 칸을 좁혀 마루를 깔아 천왕상 등을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기둥 위에 가구를 배치한 주심포 계통이나 이 곳에 새날개 모양의 부재를 사용하는 익공(翼工)을 설치하여 주심포에서 익공계로 변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문이 움직이거나 회전하는 장치가 없는데도 회전문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여진 것은 불교의 윤회사상(輪廻思想)에 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회전문

 square14_red.gif 청풍부원군 상여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장인(丈人)이자 현종의 아내인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장례식때(1675) 나라에서 만들어 보내준 장례도구이다. 상여는 가로 80cm 세로 202cm 높이 176cm로 크기는 일반상여와 비슷하나 조각과 장식이 호화롭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상여 이외에도 죽은이의 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와 그 이름을 써서 거는 명정대(銘旌帶),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써서 거는 만장대(輓章帶) 등이 함께 보존되고 있어 당시 상류사회의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청풍부원군 상여

 

 

square14_red.gif 威鳳門(위봉문)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인조 24년(1646)에춘천부사 엄황(嚴惶)이 우리 고장에 건립했던 관아건물인 문소각(聞韶閣)의 내부에 있던 출입문(內三門)이었다. 그 후 고종27년(1890)유수 민두호가 확장하며 임금의 피난시를 대비하여 이궁(離宮)으로 만들어 졌으나 임금이 사용한 일은 없었다.   1916년 문소각에 화재가 발생해 문루인 조양루와 이 위봉문 만이 남아 조양루는 우두산으로, 이 문은 1955년 지금의 도청 뒷 편에 이전하였다가 다시 1972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이렇게 문이 세개이며 가운데 문이 솟아 있는 문을 솟을삼문 또는 소슬삼문이라 부른다.

 

▲위봉문

 

square14_red.gif 朝陽樓(조양루)

   이 건물은 조선 인조 24년(1646) 춘천부사 엄황(嚴惶)이 건립했던 관아건물인 문소각의 문루(門樓)였다. 문루란 성문(城門), 지방관청 등 바깥울타리 출입문 위에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세운 다락집을 말한다.  1916년 문소각에 화재가 발생해 이 문루를 이 곳 우두산으로 옮기고 조양루라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바깥쪽에는 사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둥근기둥을, 중앙 좌우에는 사각의 기둥을 세웠다.   팔작지붕의 익공계양식을 가진 겹처마중층 문루로서 일반 누정건물과 외형은 같으나 천장이 얕고 한시(漢詩)등 현판은 걸지 않았다.

 

 

▲조양루

 

square14_red.gif 서상리 삼층석탑

   옛 문헌에 "이 곳 양화사(陽花寺)에 탑은 있으나 가옥은 이미 없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이곳에 있던 양화사라는 사찰에 속했던 탑으로 짐작된다. 기록대로 이미 오래전에 사찰은 없어지고 밭으로 이용되는 농경지 한가운데 덩그라니 탑만 남아 있으나 지금도 주변 밭에서 많은 옛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지면에서 높이는 3.2m이며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취한 신라 또는 고려 초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날렵하거나 늘씬하지 않고 둔중해 보이는 것은 옥개석(지붕돌)의 귀솟음이 약하고 2·3층의 옥신석이 급격히 작아져 약간의 균형미를 잃은 듯 하나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안정된 모습을 갖춘 석탑이다.

 

    ▲서상리 삼층석탑

 

square14_red.gif 春川鄕校(춘천향교)

   향교란 지방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공립학교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를 비롯한 많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용도별로 공간을 크게 나누어보면 후면의 대성전은 제향행사를, 전면의 명륜당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구분된다.  춘천향교의 창건년대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집(於于集)에 의하면 조선 중종 15년(1520)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향교에서는 매년 공자의 기일인 음력 4월 11일에 석전제(釋奠祭)행사를 치룬다.

 

 ▲춘천향교

 

square14_red.gif 穴居遺址(혈거유지)

   선사시대에 사람이 살던 동굴 주거지(집)로 우리지역에 신석기인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1962년 성심여자대학교(지금의 한림대학교)를 짓기 위해 학교 터를 닦다가 우연히 발견된 유적이다. 춘천의 중심부에 우뚝솟아 있는 봉의산 동쪽에서 인공적으로 파들어간 동굴주거지로 내부바닥 직경은 4m 정도의 원형이고 천장은 가장 높은 곳이 2.1m이다.   이 동굴 속에는 3사람분의 인골과 돌도끼,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천장에 그을음이 남아 있어 당시의 사람들이 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동굴에서 살다가 무덤으로 사용한 것 같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혈거유지

 

square14_red.gif 천전리 지석묘군

   지석묘란 이름보다 고인돌로 더 알려진 선사시대 중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큰 돌무덤이다. 여러개가 한곳에 몰려있어 지석묘군이라 부른다. 만든 형태에 따라 지석식(탁자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전국식)으로 구분하고, 조성지역에 따라 북방식, 남방식, 전국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소양강변을 따라 많은 지석묘와 적석총이 같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현재 4기의 지석묘만 보존되고 있다. 당시의 사회구조로 보아 지배자인 족장급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66년·'67년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로 간돌화살촉, 대롱옥, 민무늬 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천전리 지석묘군

 

square14_red.gif 三岳山(삼악산)

   화악산 능선이 동남쪽으로 내려오다 의암댐이 있는 신연강 계곡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해발 654m의 봉우리가 삼악산이다. 세 개의 큰 봉우리로 삼악산이라 불린다. 크지는 않으나 오대산의 웅장함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등산로로 유명한 산이다. 예전 서울에서 춘천으로 통하는 유일한 육로였던 석파령(席破嶺)이 있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등선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5개의 폭포가 이어지고 상원사, 흥국사 등 많은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 명산이다.삼악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 방향으로 의암호와 춘천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으로 서남쪽 방향으로 약 1.5km의 산성이 남아있다.

 

▲삼악산

 

square14_red.gif 積石塚(적석총)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 모래가 쌓여지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중도이다. 지금은 의암댐으로 두 개의 강줄기가 호수가 되고 중도는 완전한 섬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더욱 수운항로를 개설하기 위해 가운데를 잘라 중도는 두 개의 섬이 되었다.  중도는 신석기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폭넓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고, 발견된 선사유적의 보고로 학계의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중도 적석총은 청소년들의 야영장이 된 아래중도 섬의 남쪽 끝부근 호수변에 있는 2기의 돌무지무덤이다. 2기 중 1기는 1981년 발굴 조사로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고분의 규모는 둘레 40m 높이 5m정도로 주변에 흔한 강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분묘이다. 발굴조사시 김해식 토기로 불리는 돗자리무늬가 찍힌 회색 토기와 칼, 못 등 철기로 만든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일대를 지배했던 군장의 무덤으로 짐작하고 있다.

 

 

▲적석총

 

square14_red.gif 청풍부원군 묘역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장인(丈人)이자 현종의 아내인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충익공(忠翼公) 김우명(1619∼1675)의 묘역이다. 묘역에는 신도비와 숙종임금의 글씨로 새긴 어필묘비가 있고 망주석, 문인석 한 쌍씩과 석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도내에서 일반묘역으르는 유일하게 둥근 월석이 박힌 묘담장이 둘려져 있다.   이 묘역은 김공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상여와 묘소를 하사하여 북한강을 따라 배로 운구 중 현재의 묘소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며 명정이 날아가 버리자 지관이 명정이 걸린 곳을 살펴보니 지세가 뛰어난 명당으로 이곳에 장사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청풍부원군 묘역

 

square14_red.gif 신장절공 묘역

   장절공 신숭겸(?∼927)은 평산신씨의 시조(始祖)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함께 폭정을 일삼는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이다.   장군은 927년 대구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과 전투시 태조가 위험에 처하자 왕의 옷으로 변복하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고려충절의 대표적 인물이다. 적이 장군을 태조로 알고 목을 베어가 버리니 가까스레 목숨을 구한 태조는 머리잘린 장군의 시신에 금으로 머리(頭像)를 만들어 장사를 치루며 도굴을 염려해 시신은 하나인데 봉분이 세개인 1기3분(一基三墳)의 특이한 묘역을 조성하였다. 우리나라 4대 명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신도비각, 영정각, 기념관, 재실 등이 잘 배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유적지이다.

 * 평산신씨 대종중

 

 

▲신장절공 묘역

 

square14_red.gif 鳳儀山城(봉의산성)

   봉의산은 해발 301.5m로 춘천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있는 우리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산이다. 이 산의 8부능선을 따라 쌓여져 있는 봉의산성은 우리고장의 항쟁사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호국 전적지이다. 그러나 이 산성이 언제 쌓여진 것인자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1253년) 몽고족의 4차 침입시 당시 춘주성으로 불리던 이 산성에서 이들과 대항하던 춘천부민이 장렬히 전사한 비극의 현장이자 항쟁의 생생한 현장이다.   조선시대에 발행된 문헌에는 총 길이 1,284m 높이 5∼6m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군데군데 옛 성이 남아 있고 많이 허물어져 근년에 일부를 복원하기도 했다.

 

 

▲봉의산성

 

square14_red.gif 만천리 백로·왜가리번식지

   동면 박씨묘 주변 송림에 매년 많은 수의 백로와 왜가리가 떼를 지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하는 곳이다. 주변에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등이 있어 이들이 생활하며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있는 곳이다. 이들이 한창 번식하는 5월 중순경이면 푸른 소나무 숲에 마치 흰눈이 내린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 곳에서 가을까지 지내며 새끼를 키운 후 10월이 되면 다시 따듯한 남쪽을 향해 이동을 시작하는 철새이다. 백로는 몸 전체가 흰색이며 다리와 부리는 검은색이나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 되면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왜가리는 몸 전체가 회색으로 머리에 멋진 깃이 있어 백로와 쉽게 구별된다. 근년에 왜가리 일부가 겨울철까지 남아 텃새화되는 모습을 겨울 호수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만천리 백로.왜가리 번식지

 

square14_red.gif 증리 고분군

   김유정 고향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병산이 서쪽으로 흐르다 끝나는 작은 능선에 분포한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이다.

1980년 주민들이 농사용 흙을 파다 우연이 발견된 옛 무덤으로 토기 6점이 채집된 후 주변을 지표조사하여 여러 기의 고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어 봉토흙은 모두 유실되고 무덤을 조성할 때 사용한 석재(넓적한 큰돌)들의 배치모양이 지면에 나타나 옛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이 산록에는 임진왜란과 구한말에 병사와 의병들이 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치룬 것을 기념하는 진병산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증리 고분군

 

square14_red.gif 신매리 석실고분

   산록과 평야가 만나는 지점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석실고분(돌방무덤)이다. 1982년 이 일대의 농경지 정리작업 중 무덤의 뚜껑돌이 노출되어 발견된 고구려계통의 석실고분이다. 문화재관리국에서 긴급발굴을 실시하였으나 출토유물은 없었고 3사람분의 인골만 수습하였다. 하나의 돌방(石室)과 통로(널길)오 이루어졌으며 자연석을 3∼4단 쌓아 올린 후 천장부는 넓적한 판석으로 모서리를 죽이는 말각조정식천장(抹角藻井式天障)을 가진 고구려 분묘로 구조를 확인하였다. 지금은 고분 발굴 후 다시 흙을 덮은 상태로 내부구조를 볼 수가 없다.

 

 

▲신매리 석실고분

 

square14_red.gif 淸平寺址(청평사지)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영현(永賢)선사에 의해 백암선원(白巖禪院)으로 창건된 천년이 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후 보현원(普賢院), 문수원(文殊院)으로 불리다 조선명종대에 보우선사(普雨禪師)가 크게 중건하고 청평사로 이름을 고쳤다. 오랜 세월과 한국전쟁 등의 재해로 우리나라 신품4현으로 불리는 탄연(坦然)의 글씨로 조각된 청평산 문수원중수비가 파손되고 그 후 국보로 위용을 자랑하던 극락보전이 불타버려 당시의 건축물로는 회전문(回轉門/보물 164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옛스러움이 남아있는 초석과 석축, 부도, 석탑 등 석조 유물이 남아있고 고려시대에 진락공 이자현이 조성한 정원의 영지와 그의 글씨가 암각자로 남아 있다.

 

 

▲청평사지

 

square14_red.gif 昭陽亭(소양정)

   봉의산 서쪽 산록에 자리잡은 소양정은 예전에 물과 산을 함께 즐긴다는 이요루(二樂樓)라 불리다 조선 순종때 부사 윤왕국(尹王國)이 소양정이라 개칭하였다. 본래의 위치는 소양1교 위 강변에 있었던 정자이나 몇 차례의 홍수로 유실과 보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시 전소되어 없어졌던 것을 1966년 지금의 자리에 중층누각으로 복원하였다. 이 곳은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모습과 의암호가 한 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있는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팔작지붕 겹처마이며 익공계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소양정

 

square14_red.gif 청평사 삼층석탑

   구성폭포 건너편 언덕 예전의 청평사의 길목이었던 환희령(歡喜嶺) 바위 위에 서 있는 높이 3m의 석탑이다. 일반적으로 석탑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대웅전) 마당에 세우는데 이 탑은 사찰 길목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홀로 서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국에 이렇게 사찰마당을 벗어나 세운 탑은 많지않으며 이를 원탑 또는 공양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고장의 석탑 중 가장 신라양식을 취한 석탑이나 청평사가 고려때 창건된 것으로 보아 석탑도 고려때 작품으로 추정된다. 상륜부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히 줄어드는 모습이 아담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석탑이다. 청평사에 전해오는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로 일명 『공주탑』이란 애칭으로 불리운다.

 

▲청평사 삼층석탑

 

square14_red.gif 월송리 삼층석탑

   옛 문헌에 '수정동 조면사지(造麵寺址)'에 속한 삼층석탑으로 전해오나 지금은 민가 골목길에 탑만 홀로 서있다. 탑의 상륜부가 없어지고 기단부마저 묻혀있어 정확한 크기나 규모는 알 수 없으며 현재 지면에서 높이는 1.9m에 불과한 작은 탑이다. 조면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사찰의 규모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주변에 옛 기와조각이 널려 있으며 이 곳을 사태골(沙汰谷)이라고 부르는 점으로 보아 예전에 산사태로 사찰과 이 일대가 매몰되고 탑도 이 때 기단부가 묻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석탑 2층 옥개석의 몰매가 다른 층과 다르고 전체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단조로운 모습이다. 옥개석 각 층 네 귀퉁이에 철제조각 파편이 박힌 구멍이 있는데 이는 풍경류를 달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반기 석탑이다.

 

▲월송리 삼층석탑

 

square14_red.gif 삼악산성지

   이 산성은 등선폭포 좌측이 되는 삼악산 2봉에 위치하고 있다. 언제, 누가, 왜 쌓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산성으로 성곽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성돌이 무너지고 허물어져 옛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이 산성은 삼악산 등산로변의 흥국사 뒤편인 북문재부터 시작되어 강촌방향의 능선을 따라 마치 용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약 1.5km가 이어진다. 삼악산성은 산상에 흔하게 흩어져있는 산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험준한 자연지형을 이용해 쌓았으며 전면에 서울에서 춘천의 유일한 통로였던 석파령(席破嶺)을 내려다 보며 절벽에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맥국의 성지라는 설과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피난 근거지로 이용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궐터, 흥국사, 망국대 등의 옛 지명이 전해온다.

 

 

▲삼악산 성지

 

square14_red.gif 최재근 전통가옥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행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는 우리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건축물이다.

1917년에 지은 이 집의 안채는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웃방·안방·부엌을 두었으며 오른쪽에 건넌방이 하나 있다. 대청마루 앞에 들장지 문이 있어 계절과 용도에 따라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선조들의 기지가 엿보인다. 사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지금은 방으로 변한 외양간과 머슴방 헛간을 차례로 두었고 오른쪽으로는 밖으로 툇마루를 놓은 사랑방과 큰사랑방 곳간이 있다. 사랑방과 곳간 사이에 협문을 만들어 사랑에서 안채의 출입을 쉽게 하도록했다.안채는 팔작지붕이며 삼량가구이나 사랑방쪽으로는 평사량으로 되어있다.

 

 

▲최재근 전통가옥

 

square14_red.gif 민성기 전통가옥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행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는 우리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 1925년 화천에 있던 것을 이곳에 묘역을 관리하기 위한 묘막(재실)으로 사용하고자 옮겨지은 건물이다. 흔히 민씨묘라고 불리는 이곳은 휘문중학을 창설한 민영휘(閔泳徽) 묘역으로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 숲과 흙담에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매우 고풍스럽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3량가구의 맞배지붕과 5량의 팔작지붕을 함께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성기 전통가옥

 

square14_red.gif 김정은 전통가옥

   ㄱ자형의 안채와 뒤집힌 ㄴ자형의 전체적으로 ㄷ자형의 배치를 행랑채가 이루는 영서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민가이다. 안채의 대청과 건넌방 앞으로 팔각의 주초석을 놓고 둥근 나무기둥을 세운 후 함석으로 지붕을 만들어 햇빛가리개(차양막)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양식은 도내에서는 이곳과 강릉의 선교장내에 있는 열화당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물이다. 본래 이곳은 도깨비터로 알려져 사람들이 꺼리던 집터였으나 이 댁의 선조가 집을 짓고 살던 중 벼락으로 집 뒷 편의 나무가 넘어간 뒤부터 집안이 번창하였다고 전해온다.

 

▲김정은 전통가옥

 

square14_red.gif 방동리 고구려고분

    삼국시대에 우리고장이 고구려영토에 편입되었던 것을 증명하는 옛 고구려시대의 돌방(石室) 무덤이다. 1981년 이미 도굴되어 훼손된 모습으로 발견된 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있는 2기의 석실고분으로 1993년정비 발굴을 실시해 그 구조는 파악했으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덤의 동측에 널길(연도)을 낸 단실분으로 크지 않은 자연석을 사각으로 쌓아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낣적한 판석으로 돌방의 모서리를 죽여나가다  맨위 공간에 하나의 뚜껑들을 덮는고구려 말각조정식천장(抹角 藻井式 天障)구조를 갖고 있다. 2기의 고분 중 서쪽 고분은 발굴조사 후 흙으로 덮었으며 동쪽 고분은 내부구조가 보이도록 노출하여 관람할 수 있게 보호각을 세워 놓았다.

 

▲방동리 고구려 고분

<춘천의 문화유적>

 *사진은 춘천문화원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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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기가옥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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