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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가) 분    류 : 자연환경
(나) 문화재명 : 삼악산(三岳山)
(다) 지정번호 : 강원도지정 기념물 제16호
(라) 지 정 일 : 1973년 7월 31일
(마) 소 재 지 :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산 164-3외 4필지

(바) 설    명 
삼악산은 시내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10km 지점에 있으며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등선폭포, 비선폭포, 승학폭포, 백련폭포등 크고 작은 5개의 폭포가 나타난다. 높이가 약10m에 이르는 제1폭포에서 제3폭포까지는 난간의 계단길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아 자연의 웅장한 신비를 바로 눈 앞에서 바라볼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산세가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이 산을 형성하고 있는 용화봉과 청운봉, 등선봉의 3개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암봉으로 이루어져 절경을 이룬다.
삼악산 등산로의 시발점인 등선계곡은 고고시대의 빙하 지역이였다는 깊은 바위협곡으로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담긴 옥녀탕 등이 이어져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삼악산에는 흥국사, 상원사등 7개의 사찰과 삼악산성이 있고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654m 높이의 정상에 이르며, 정상에서는 의암호의 아름다운 경관과 춘천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보아 흥국사 건너편 산이 등선봉인데 이곳은 옛날에 맥국때 쌓았다는 삼악산성 성곽과 대궐터가 남아 있다.

 

의암호   
삼악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맑은 호수 의암호.
북한강의 아름다운 정취를 만끽하며 의암호에 이르면 호반 춘천의 명성에 어울리는 황홀한 절경이
펼쳐진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든 의암호는 춘천시내 서남쪽 지점의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바로 아래 신현강 협곡을 막아 의암댐을 축조함으로써 생긴 인공 호수이다.
춘천시가지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의암호는 북쪽으로 춘천호와 이어져 있고 동북쪽으로 소양호와 이어져 있는데 경춘국도변의 인어상과 김유정 문인비,그리고 삼악산의 빼어난 절경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의암댐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낚시터는 자연산 잉어, 붕어등의 낚시를 사철 즐길수 있으며 주변의덕두원, 붕어섬, 용늪등의 낚시터는 잘 알려져 있다.

 

등선폭포
삼악산의 많은 폭포들 가운데 하나인 등선계곡에 자리잡고있는 이 폭포는 남쪽 계곡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비선, 승학, 백련, 비룡폭포 및 가폭포 등 모두 6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는데 단단한 규암의 지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시원스럽고 장쾌하며 독특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선폭포는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는 선녀탕과 기암괴석의 절벽으로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높이 10m에 이르는 제 1폭포에서 제 3폭포까지는 난간의 계단길을 통해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곳을 거쳐 삼악산으로 오르는 등산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아 초보자들이 쉽게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폭포가 발달하지 않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지대가 높지 않은 춘천 남면 강촌리 일대는 폭포가 잘 발달되어 있고 교통편도 편리하게 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니메이션박물관
춘천의 아름다운 주변여건과 7년 동안 진행해온 애니타운 페스티벌을 바탕으로 2003년 10월 1일 춘천 서면 현암리 호숫가 3만 6천평부지에 14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882평 규모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있다.
애니메이션에 관한 자료를 발굴ㆍ수집ㆍ보관ㆍ전시ㆍ연구함으로써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소중함을 일깨워 국민 정신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만들고자 춘천시와 춘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운영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으로 창작 예술품으로서, 삶의 표현 매체로서 자리 잡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산업의 근간을 마련하고 우리 애니메이션의 위상과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층 전시관은 애니메이션의 기원과 탄생 및 발전, 애니메이션의 종류, 제작기법, 제작과정, 애니메이션 관련 기기 발달사, 한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볼 수 있고, 2층 전시관은 북한관, 춘천관, 미국관, 일본과, 유럽관, 아시아를 포함한 기타 지역관에서 세계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어 청소년은 물론 애니메이션 매니아들까지도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1만 여점의 애니메이션 관련 소장품과 체험시설을 갖추고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심미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을 널리 알리고 애니메이션을 육성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 우리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여 문화산업의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박물관은 우리나라에 유일한 인형극장과 산림박물관, <봄ㆍ봄>, <동백꽃>으로 유명한 김유정의 문학촌으로 이어지는 문화 벨트의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문화행사를 지역문화와 융합시킬 것이다.

 

현암민속박물관
연건평 200여평 규모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지어진 현암민속관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조상들의 체취가 담긴 토기, 도자기를 비롯 각종 민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 2층에는 차를 마시면서 춘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휴게실까지 갖추었다.
현암민속박물관의 관장인 강전영씨가 30여년 동안 어렵게 수집한 200여점의 도자기와 50여점의 민화를 일반인들에게 민속박물관을 통해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중국연변에서 가져온 고려시대 '토기구룡정병'이 이북에서는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한다.

 

서상리 삼층석탑
(가) 분    류 : 불교 석조문화재
(나) 문화재명 : 서상리 삼층석탑(西上里 三層石塔)
(다) 지정번호 :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6호
(라) 지 정 일 : 1971년 12월 16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서상 1리(골미마을)
(바) 제작시기 : 통일신라 말~고려초

(사) 설    명 
옛 문헌에 신라시대에 이곳에 양화사(陽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북한강을 굽어보는 이곳 밭 한 가운데 탑 한 기만이 덩그라니 남아 있으나 지금도 주변에서 많은 옛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절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탑신이 기울어져 지난 1980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탑의 윗 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는 노반석(路盤石)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지면에서의 높이는 3.2m이다.
이중기단으로 하층기단은 부재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 석탑이 날렵하거나 늘씬한 맛이 없고 둔중(鈍重)해 보이는 것은 옥개석(屋蓋石)의 급한 물매와 귀 솟음이 약하고 2·3층의 옥신석이 급격히 작아져 균형미를 잃은 듯 하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으나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일직선에 가깝게 줄어드는 체감율(遞減率)과 큰돌을 통채로 다듬어 옥신과 옥개를 하나로 조각한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탑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안정된 모습을 갖춘 석탑으로 일명 양화사지 삼층석탑이라고도 불린다.

 

청풍부원군 묘역
(가) 분    류 : 유교유적
(나) 문화재명 : 청풍부원군 상여(淸風附院君 喪餘)
(다)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20호
(라) 지 정 일 : 1982년 8월 7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국립춘천박물관
(바) 제작시기 : 조선시대

(사) 설    명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顯宗)의 장인(丈人)이자 현종의 아내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아버지인 충익공(忠翼公) 김우명(金右明)의 묘역이다.
김우명(1619∼1675)은 영의정을 지낸 잠곡(潛谷) 김육(金堉)의 둘째 아들이다. 인조 20년에 진사(進士)가 된 후 부평 도호부사(富平都護府使)를 역임하고 따님이 현종비(顯宗妃)인 명성왕후로 진봉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묘역에는 외손(外孫)이 되는 숙종(肅宗1674∼1720)의 친필(御筆) 묘비가 있고 망주석, 문인석 한 쌍식과 석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도내에서 일반인 묘로는 유일하게 둥근돌(월석)이 박힌 묘담장이 둘러져 있다.
묘역 입구에는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의 저자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 전서(篆書)했으며 비문은 호조판서였던 이민서(李敏敍)가 짖고 윤심이 글씨를 쓴 3.9m 높이의 신도비가 당당하게 서 있으며 당시에 사용했던 공을 운구했던 상여는 국립춘천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이 묘역은 김우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상여와 춘천시 신동면에 묘소를 하사하여 북한강을 따라 배로 운구 중 현재의 묘소 앞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며 명정(銘旌)이 날아가 버리자 지관이 명정이 걸린 곳을 살펴보니 지세(地勢)가 뛰어난 명당(明堂)으로 이곳에 장사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신 장절공 묘역
(가) 분    류 : 묘역
(나) 문화재명 : 신 장절공 묘역(申 壯節公 墓域)
(다) 지정번호 : 강원도 기념물 제21호
(라) 지 정 일 : 1976년 6월 17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1리
(바) 제작시기 : 고려시대

(사) 설    명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始祖) 장절공 신숭겸(申崇謙/?∼927)의 묘역이다. 신숭겸은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함께 폭정을 일삼는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이다.
신 장군은 927년 대구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甄萱)군과 전투시 태조인 왕건이 위험에 처하자 왕의 옷으로 갈아입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고려 충절의 대표적 인물이다.적군이 장군을 고려의 왕(태조)으로 알고 목을 베어가 버리니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태조(太祖)는 머리 잘린 장군의 시신에 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사를 치렀다. 도굴을 염려해 시신(屍身)은 하나인데 봉분(封墳)은 세 개인 1기 3분(一基三墳)의 특이한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 묘역은 우리나라 4대 명당지(明堂地)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있으며 묘역을 비롯 영정각, 신도비각, 기념관, 재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매리 석실고분
(가) 분    류 : 고분유적
(나) 문화재명 : 신매리 석실고분
(다) 지정번호 : 강원도 기념물 제46호
(라) 지 정 일 : 1982년 11월 3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 3리 177-14
(바) 제작시기 : 삼국시대

(사) 설    명 
산록과 평야가 만나는 지점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석실고분(돌방무덤)이다. 1982년 이 일대의 농경지 정리작업 중 무덤의 뚜껑 돌이 노출되면서 발견되어 문화재관리국에서 긴급발굴로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무덤은 도굴된 흔적은 없으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3사람 분의 인골(人骨)만 남아 있었다. 무덤의 평면배치는 "ㄱ"모양이며 전면 우측인 동쪽에 통로인 널길(羨道)이 있는 한 칸 방으로 된 고구려계통의 단실묘(單室墓)이다.
석실 벽은 납작한 판석(板石)과 강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으며, 천장은 큰 판석 여러 매를 어긋나게 포개놓은 후 마지막으로 타원형 판석 한 매를 한 가운데 올려놓아 완성하였다.
석실 내부 바닥은 한쪽에 작은 돌을 깔고 석회(石灰)를 발라서 시신(屍身)을 놓는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석실은 직사각형으로 길이는 북벽 140cm, 서벽 188cm, 남벽 80cm이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142cm이다. 통로의 두 벽은 2단으로 쌓았고 길이 200cm 폭 80cm 높이는 90cm이며, 입구에 하나의 판석을 세워 막아 놓았다.
지금은 고분 발굴 후 다시 흙으로 덮은 상태로 내부구조를 볼 수 없다. 다만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서면 방동리 고구려고분(문화재자료 제106호)이 이 고분과 천장수법과 평면이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유적에 대한 모습을 유추(類推)해 볼 수 있다.

월송리 삼층석탑
(가) 분    류 : 불교 석조유적
(나) 문화재명 : 월송리 삼층석탑(月松里 三層石塔)
(다)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호
(라) 지 정 일 : 1984년 6월 2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월송 2리 666-1
(바) 제작시기 : 고려시대

(사) 설    명 
이 석탑은 옛 문헌에 수정동 조면사지(造麵寺址)에 속했던 탑으로 전해오나 지금은 사찰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석탑만이 민가(民家) 골목길에 외롭게 서 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지고 기단부(基壇部)의 상대갑석 이하는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나 규모를 알 수 없으며 현재 지면에서 높이는 1.88m의 작은 탑이다.
석탑의 부재는 파손되지 않고 튼튼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2층 옥개석(屋蓋石)물매가 다른 층과는 다르게 조각되는 등 솜씨가 세련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둔중(鈍重)하고 단조로운 모습으로 보아 고려후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조면사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사찰의 규모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직도 주변에서 많은 양의 기와조각이 널려있다. 이곳을 사태골(沙汰谷)이라고 부르는 점으로 보아 예전에 산사태로 사찰과 이 일대가 매몰되고 석탑도 이때 기단부가 묻힌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삼악산성지
(가) 분    류 : 관방유적
(나) 문화재명 :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
(다)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0호
(라) 지 정 일 : 1984년 6월 2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47
(바) 제작시기 : 미상

(사) 설    명 
이 산성은 등선계곡 좌측 삼악산의 2봉 정상을 따라 축성되어있다. 언제, 누가, 왜 쌓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산성으로 성곽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성돌이 허물어져 옛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산성은 삼악산 등산로 변에 있는 절(흥국사) 뒤 고개인 북문재(北門嶺)부터 시작되어 강촌방향으로 마치 용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가파른 정상의 능선(稜線)을 따라가며 축조(築造)되었는데 약 2.5㎞가 이어진다.
산성의 전면으로는 예전 경춘국도 개통 전에는 서울에서 춘천의 유일한 통로였던 석파령(席波嶺)을 내려다보는 절벽에 쌓은 천혜(天惠)의 난공불락(難攻不落) 요새(要塞)이다. 성곽은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진행되며 자연지형에 따라 높이 1∼3m 윗 부분 폭은 0.8∼1.8m의 규모로 다듬지 않고 산상에 널려 있는 깨진 산돌(山石)을 이용해 쌓아가면서 바위가 돌출(突出)된 부분과 절벽부분은 성벽을 쌓지 않고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성의 축조배경으로 신라 경명왕(景明王) 2년(918)에 태봉국(泰封國)을 세운 궁예(弓裔)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쫓겨 쌓았다는 설과 삼국시대 이전에 춘천지역에 있던 부족국가인 맥국(貊國)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확실한 역사기록은 없으나 성 주변에서 옛 그릇 조각과 기와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흥국사(興國寺) 망국대(望國臺) 대궐터, 기와를 굽던 '와대기' 등 의미 있는 옛 지명이 전해진다.

방동리 고구려고분
(가) 분    류 : 고분유적
(나) 문화재명 : 방동리 고구려고분(芳洞里 高句麗古墳)
(다)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6호
(라) 지 정 일 : 1985년 9월 13일
(마)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 1리 816
(바) 제작시기 : 삼국시대

(사) 설    명 
이 고분은 1981년에 학계에 알려진 고구려시대의 옛 무덤이다. 이미 도굴되어있던 것을 발견한 고분으로 삼국시대에 우리고장이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던 것을 증명할 수 있는 2기의 돌방(石室)무덤이다.
1993년 정비발굴을 실시해 만든 수법과 내부구조를 파악하였는데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2기의 무덤 모두 동쪽에 통로(羨道)인 널길을 낸 무덤 방이 하나인 "동편연도 단실분"(東便羨道 單室墳)인데 서측의 고분은 석실 위에 바로 봉토를 입혔으나, 동측의 고분은 석실주위를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돌을 쌓아 돌린 후 봉토를 씌운 점이 특색이다.
2기 모두 크지 않은 자연석을 쌓아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넙적한 4매의 판석으로 돌방의 모서리를 없애고 다시 그 위에 같은 방식으로 4매의 판석을 덮은 후 맨 위의 구멍에 하나의 뚜껑 돌을 덮는 말각식 천장(抹角式 天障)으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축조방식은 고구려가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신라와 백제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이다.
이러한 구조와 만든 수법으로 보아 고구려계통임을 알 수 있으며 고구려가 장수왕(長壽王413∼491)때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다가 6세기 중엽에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에게 내어 주는데 이 무덤은 그사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2기의 고분 중 서쪽고분은 발굴조사 후 다시 흙으로 덮었으며 동쪽 고분은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노출시킨 후 보호각을 세웠다.

한백록 묘역 . 정문
(가)  분    류 : 묘역유적
(나) 문화재명 : 춘천 한백록묘역 및 정문
(다) 지정번호 : 강원도지방 문화재자료 제131호
(라) 지 정 일 : 2000년 11월 18일
(마) 소 재 지 : 묘역)춘천시 서면 금산리산 64  
                    정문)서면 방동리 406-2
(바) 제작시기 : 조선시대

사) 설    명 
충장공(忠壯公) 한백록(1555 - 1592) 본관은 청주이며, 춘천 서면 방동리 출생으로 임진왜란 시 원균과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해전 중 장렬히 전사한 충신이다.
선조 13년 알성무과에 급제 후 진잠현감을 거쳐 경상우수사 소관의 지세포만호(知世浦萬戶)로 부임하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信)장군 등과 옥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 합포와 적진포에서도 전과를 거두어 부산첨사(釜山僉使)에 임명되었으나 선조 25년(1592) 7월 17일 남해 미조항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38세를 일기로 전사한 충신이다.
조선 영조 21년(1751) 정려가, 순조 7년(1807)에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 兵曹判書)로 증직되었고 순조 11년(1811)에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公의 묘소는 서면 금산리 관음동 골짜기 낮은 구릉에 있고, 정문은 서면 방동리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