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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유래

 

약사

연표

인물1

인물2

지명연혁

전설

  

춘천의 지명유래


    지명(地名)의 생성은 대체로 그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인문지리적(人文地理的)인 상황이 투영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지명을 고찰함으로써, 그 지역의 특수한 역사적인 경험과 자연지리적인 조건들을 짐작해낼 수 있는 것이다. 지명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랜동안 원음(原音)이나 어의(語義)가 변화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변화상에 있어 보수성과 연속성을 지니고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명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종종 언어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최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학(地域學)의 정립과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데, 지명에 대한 연구 또한 그에 따라 더욱더 활성화되리라고 믿는다. 여기에서는 각 읍면동(邑面洞)별로 주요한 지명을 추출하여 간략하게 소개하여 두기로 하겠다. 이 항목을 기술하기까지의 여러가지 제반 사정에 따라, 현지조사에 의한 채록은 그다지 하지 못하였다. 지명을 채록하는데에 있어서는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주요 지명을 선정하고, 아울러 이에 대한 약간의 분석을 가하는 식으로 하였음을 밝혀 둔다.

 

square14_red.gif 중앙동(中央洞)

  ▷구렁고개 : 현재의 중앙로로부터 소양로 2가로 넘어가는 고개길 이름. 과거에는 이 고개길이 사창고개와 함께 소양로와 근화동 방면으로부터 도청쪽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고개길이었다. 70세 이상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의 비석거리일대에서 장(場)이 선 후, 보부상(褓負商) 등이 이 고개길로 넘나들었다고 한다.

  "보부상"은 일재의 잔재로, "부보상"으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www.bubosang.net

 

square14_red.gif 교동(校洞)

  ▷백고개 : 교동에서 옥천동(玉泉洞)으로 넘어가는 고개길 이름. 지금은 시(市)의 간선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오가와 게이키치의 사진자료집에 소개되어 있는 교동일대의 사진을 보면, 일제시기까지 이 지역은 봉의산(鳳儀山)으로부터 뻗어나온 작은구릉들이 골을 이루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일대로부터 동면(東面)지역에 이르기까지 과수원(果樹園)이 적지 않이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 '배(梨)고개'라는 말이 경음화(硬音化)되어 '백고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박달재' 등과 같이, '큰 고개', '주요한 고개길' 등의 의미로서 '박고개'라고 불리던 것이 '백고개'라고 전음(轉音)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향교골 : 현재의 향교자리를 말한다. 오가와 게이키치의 사진자료집을 보면, 지금의 향교는 대성전(大成殿) 바로 뒷 편에 봉의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온 주맥산(主脈山)이 솟아 있고, 그 좌우에는 일종의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라고 할 수 있는 나즈막한 구릉이 둘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구릉에 둘러싸인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는데다가, 향교가 위치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 일대를 '향교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동리(衙洞里) : 지금의 교동 중 춘천여자고등학교 바로 아랫쪽 일대를 과거에는 아동리라고 불렀다. 조선시기 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아전(衙前)들이 많이 밀집하여 살고 있었던 전통은 일제시기와 1945년 이후에도 이어져, 과거와는 의미가 달라졌지만, 공무원들이 적지 않이 이곳에 밀집하여 주거하였다. 이러한 주거에 있어서의특징은 1980년대 중반 교외(郊外)지역에 신흥아파트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여, 현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우물 : '큰 우물'이라는 의미에서 생긴 명칭이다. 지금의 향교 전방의 좌측 소로로 빠지는 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이전까지 이 일대의 주요 취수원(聚水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말탄개미 : 지금의 춘천여자고등학교에서 향교쪽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말탄개미'라는 명칭은 경기도의 여주(驪州), 이천(伊川), 양평(楊平) 등과 충청북도의 일부지역, 그리고 강원 영서지역에 집중·분포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대개 이러한 지명이 있는 지역은 비교적 넓은 규모의 평탄한 대지이거나 풍수상 입지조건이 좋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어느 지역의 경우에는 그 일대에서 과거 장수(將帥)들이 전쟁을 하였다는 전설이 채록되기도 하고, 고대시기의 고분들이 분포되어 있는경우가 왕왕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볼 때, 과거(향교가 건립되기 전 시기)향교일대에 고분이 소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의 한림대학교 뒷 편에서 통일신라시기 석실분(石室墳)유적이 발견된 바 있음을 상기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현(馬峴) : 말탄개미를 마현이라고도 하였다.

 

square14_red.gif 조운동(朝雲洞)

  ▷대파니 : '대판리(大板里)'가 음전(音轉)되어 생겨난 지명이다. 현재의 조양동일대가 이에 해당된다. 대판리는 19세기말 춘천군 춘천읍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여 있다가, 1939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이 이루어질 때, 가연리(佳淵里), 낙원동(樂園洞)의 일부지역과 합쳐져 대화정(大和町) 1정목(丁目)이 되었고, 1946년 왜식동명변경령에 의해 조양동(朝陽洞)으로 고쳐졌다.

 

square14_red.gif 약사동(藥司洞)

  ▷약사리(藥司里)고개 : 지금의 중앙시장에서 약사동쪽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조선시대로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 고개의 우측에 한약사(韓藥師)들이 길을 따라 한약방(韓藥房)을 열고 있었던 까닭에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

 

square14_red.gif 죽림동(竹林洞)

  ▷수평말 : 지금의 죽림동 천주교성당 일대의 옛 명칭. '수평말'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죽림동일대에 대숲이 우거져있었다는 전언을 통해서, 숲과 관련이 있는 명칭이 아닌가 한다. 즉, '숲이 우거진 평지'를 의미하는 '수평(수坪)'이 아닌가 한다.

  ▷가연리(佳淵里) : 지금의 죽림동성당 일대에 '가연'이란 연못이 있었던 까닭에 그 인근의 마을을 가연리라 불렀다. 전통시대에 작성된 지리지와 고지도를 참고하여 보면, '가연(佳淵)'은 '가연(可淵)'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큰 연못'이란 의미에서 '가연'이란 명칭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시장고개 : 죽림동에서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던 고개길 이름. 현재는 자취가 없어졌다. 이 지명은 근대시기에 들어와 생겨난 것이다.

 

square14_red.gif 소낙동(昭樂洞)

  ▷미미개고개 : 중앙로에서 소양로 3가 지역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이 고개에는현재 간선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사창고개 : 소양로에서 요선동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古地圖를 보면, 이 고개길에 해당되는 부분에 사창(司倉)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러한 고개이름이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중앙동의'구렁고개'와 함께 이 고개가 중앙로와 '앞뚜르'지역을 연결시키는 유일한 고개길이었다고 한다. 과거 보부상들이 이 고개길로 넘나들었다고 한다.

 

square14_red.gif 근화동(槿花洞)

  ▷앞뚜르 : 현재의 근화동 일대, 춘천역 일대, 미군부대 일부지역을 지칭하는 명칭.과거 이 일대는 춘천시내(과거 郡지역 제외) 지역에서는 가장 넓은 평야이었다. 지금도 도청 정상에서 바라보면, 이 지역이 하나의 들을 형성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수 있다. 춘천 관아(官衙)에서 보기에 앞쪽에 있는 들이라는 의미에서, '앞들(前坪)'이라 불리는 것이, 춘천의 방언식(方言式) 발음에 의해 '앞뚜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앞뚜르목:물방아거리(아래 내용 참조)에서 당간지주쪽의 지형(현재 매립)이움푹 만곡되었다가 다시 강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기에,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

  ▷종대 : 종(鍾)이 달려 있는 대(臺)라는 의미의 명칭. 현재의 근화동 당간지주를지칭하는 것이다.

  ▷갯대배기 : 근화동 당간지주가 있는 곳 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물방아거리 : 현재의 근화동 뱃터 좌측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20세기 중반까지현재의 근화동 뱃터 입구의 좌측에 서낭당과 물방앗간이 있었다. 물방앗간은 1950년대까지 존재하여 있었고, 서낭당은 1960년대 중반까지 존속하여 있었다. 물방아거리에 있던 서낭당은 근화동민들이 주요한 동제(洞祭)를 지내던 곳인데, 1980년대 후반까지 동제를 거의 원형대로 지냈다.

  ▷수동리(水洞里) : 물방아거리를 조선시대 수동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이곳에서일부의 세역미(稅役米)를 날랐다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물방아거리와 그 맞은편 강안(현재 매립)에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다수 살았다.

  ▷큰대문집거리 : 현재의 춘천역 합숙소(合宿所) 맞은 편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는 명칭. 일명 '이삼오식 거리'라고도 한다. 이러한 명칭이 생기게 된 까닭은 합숙소 맞은 편에 모순당택(慕舜堂宅)이 있었는데,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대문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명칭을 얻게 되었다. 모순당택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상당부분이 파괴되기 전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밭뙈기 : 모순당택 남쪽, 현재의 근화동 유치원이 있는 거리를 지칭하는 명칭.

  ▷말무덤 : 현재의 근화동일대에는 과거 적지 않은 수의 '말무덤'이 분포하고 있었다. 1960년대까지 보충대(補充隊)가 있었던 모순당(慕舜堂) 이씨택(李氏宅) 소유의 솔밭일대, 춘천역 건너편 방위부대가 있었던 자리, 댐 공사로 강폭이 넓어져 수몰된 근화동 제방 건너편 지역에 돌과 모래가 썩어 쌓여져 있는 '말무덤'이라는 것이 다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적석총(積石塚)이 아닌가 한다.

  ▷속갯보 : 지금의 근화동 운전연습장 맞은 편 들녘에 있던 보(洑) 명칭. 모순당 이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보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보가 만들어진이유는 보 자리를 중심으로 넓은 논이 경작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1980년대 초반까지 이용되었고, 일부지역에 물을 끌어들여, 미나리꽝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square14_red.gif 소양동(昭陽洞)

  ▷기와집골 : 현재의 근화국민학교 길 맞은편, 소양동 3통일대를 지칭하는 명칭.197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 왜식 한옥이 집중·분포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 기와집골에는 일제시기 일본인들과 친일개화 인사들이 다수 살았다. 1945년 이후 일본인 소유의 개량 한옥들이 대량 적산처리되었다. 이 지역은 교동, 옥천동 등과 함께 일제시대 일인들의 집단 거주지로서, 지역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입장에 서있던 뜻있는 유림(儒林)으로부터 백안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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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집골 전경(어안렌즈로 촬영)  Bullets021_1.gif 사진더보기

 

  ▷백석동(白石洞) : '기와집골'을 백석동이라고도 부름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알려진 것이 없다. 혹 고대의 주요 지명소 중 '박(park)'과 '달(tar)'이 합성된 '박달'이 한자 표기된 것이 아닌가 한다.

  ▷비석거리 : 지금의 송덕비군(頌德碑群)이 있는 곳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곳은 과거 이래 우두동과 서면일대의 농산물이 춘천시내로 1차 유입·거래되던 곳이었다. 1950년대까지 전통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던 계층의 사람들과 반점(飯店) 및 주막(酒幕)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군집하여 살았다.

  ▷주막거리 : 현재의 송덕비군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근화국민학교 방면의 노변(路邊)에 주막이 늘어서 있었던 까닭에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 1930년대까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주(酒)'자를 쓴 깃발을 내걸은 주막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탑거리 :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충원사지(沖圓寺址) 7층석탑이 있는 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조선시대의 문헌기록을 참고하여 보면, 원래 이곳으로부터 현재의 요선터널에 이르는 능선일대는 과실수와 송림이 우거진 곳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로부터 일제시기를 거쳐 최근까지 기름공장, 제재소, 철물점, 술집 등이 밀집되어 있는, 다시말해 사족(士族)들이 거처하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의 곳으로 바뀌었다.

 

square14_red.gif 호반동

  ▷대나무골 : 지금의 소양 나루터와 근화국민학교 뒷편 쪽에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

 

square14_red.gif 후평1·2·3동

  ▷뒷뚜르 : 춘천 관아의 뒷쪽에 있는 들녘이란 의미에서 뒷뚜르라고 명칭하였다.  현재의 후평동일대 전체가 이에 해당된다.

  ▷부안:조선시대에 현재의 부안국민학교 부근에 보안역(保安驛)이 있었던 까닭에 이러한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이 일대에는 1950년대까지 보안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군집하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토착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이주하고 타 지역과 타 동리 사람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square14_red.gif 효자1·2·3동

  ▷말무덤 : 지금의 강원대학교 정문 쪽으로 나있는 능선에 있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형지리적인 조건으로 보아, 삼국시대 후기 또는 신라시대 이후의 석실분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두하리 :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도와리(陶瓦里)'의 음전(音轉)으로서, 과거 이 지역에서 숯을 굽거나 도기를 구웠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도화리(桃花里)'의 음전으로서, 이곳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뚜와리'의 의미로서, 이곳의 지형이 뚜와리를 틀 듯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기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지명총람』는 이 세 가지의 명칭이 모두 채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아 보지 못했다. 현재의 강원대학교 정문 방면으로 나있는 능선자락일대를 지칭한다.

  ▷진등 : 강원대학교 정문 방면으로 이어져 있는 능선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진서리 : 진등의 다른 명칭. 춘천에서는 '길다'를 '질다'로, '김'을 '짐'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 볼 때, '진서리'와 '진등'은 '긴 서리'와 '긴 등'의 방언식 발음이다. 효자동으로부터 강원대학교 쪽으로 나있는 능선은 나즈막하면서도 골이 많아, 과거 산능선을 타고 강원대학교 후문 방면으로 내왕하였다. 이 산 잔등의길이 20여리나 되었다고 한다.

  ▷효자문거리 : 효자동 명칭의 유래가 되는 '반효자(潘孝子)' 정문(旌門)이 있었던 곳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현재의 강원대학교 정문 왼편쪽이다.

  ▷투구봉 : 효자동 공동묘지가 있는 산의 별칭, 산의 모양이 투구처럼 봉긋하다고하여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square14_red.gif 석사동(碩士洞)

  ▷사기장골 : 춘천교육대학교를 지나 춘천∼홍천간 도로 좌측에 있는 군부대 안쪽의 골짜기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과거 이곳에 사기를 굽고 제조하던 곳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한국전쟁시기의 격전지이기도 한데, 1970년대까지 한국전쟁시기에 사용하던 참호와 전쟁 잔여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여우골 : 사기장골에서 강원대학교와 강원사대부속고등학교 쪽으로 나있는 골짜기 이름. 1960년대까지 이곳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스무숲 : 석사동에 소나무군락이 있었는데, 이를 스무숲이라고 하였다 한다. 구체적으로어느 지점인지를 알 수 없다.

  ▷쥐역뚜르 : 춘천∼홍천간 도로 우측에 있는 들 이름. 이곳에는 조선시대 이래 많은 논과 보(洑)가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 있던 보로서는'상보', '중보', '쥐역뚜르보'등이 있다.

  ▷애막골 : 안화산에 있는 마을 이름. 이곳은 풍양조씨 회양공파(淮陽公派)가 춘천에 정착하고 세거한 최초의 우거지(寓居地)로서도 유명하다. 현재 이곳에는 풍양조씨 회양공파의 파조(派祖)인 조신(趙愼)의 아내 고성(固城) 이씨묘(李氏墓)가 있다.

 

square14_red.gif 퇴계동(退溪洞)

  ▷무린개 : 현재의 퇴계동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과거 이곳에는 공지천으로 유입되는 개울물이 있었는데, 이를 '무릉계(武陵溪)라고 했다. 무릉계라는 명칭은 춘천의 고지도와 지리지상에서도 발견된다. '무린개'는 '무릉계'가 음전된 것이다.

  ▷퇴계말 : 지금은 택지개발로 없어졌으나, 과거 퇴계동의 큰 연못가에 있던 마을 이름. 1980년대 중반까지 이 곳은 도심 중의 오지(奧地)와 같아서, 산짐승들이 마을에 종종 출현할 정도였다. 지역의 일부 사족(士族)들과 당시 동민(洞民)들의 전언에 의하면, 연못가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우거(寓居)하던 정자 터가 있었다고 한다.

  ▷윗무린개 : 퇴계동 1통지역에 있던 마을 이름. 과거 우시장(牛市場) 입구쪽에 있던 마을.

  ▷아랫무린개 : 퇴계동 2·3통 지역에 있던 마을 이름.

  ▷성미골 : 현재의 남춘천역에서 남춘천국민학교 사이에 있던 마을 이름.

  ▷백석동(白石洞) : 퇴계동 국사봉(國師峰) 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사봉에 하얀바위가 100층을 이루고 있어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square14_red.gif 온의동(溫衣洞)

  ▷오누골 : 온의동의 옛 이름. 지금도 70세 이상자들은 온의동을 이렇게 부른다. 노뉘골이라고도 한다.

  ▷마내 : 온의동 중심지의 서측에 있는 골짜기 이름,

  ▷선들고개 : 온의동에서 삼천동(三川洞)으로 넘어가는 고개길 이름.

  ▷장고개 : 온의동에서 춘천시 중심가쪽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춘천시쪽에 시장이 있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square14_red.gif 삼천동(三川洞)

 ▷마삼내 : 삼천동에서 송암리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현재 이곳에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강창골 : 현재의 베어스타운관광호텔 뒷편에 나있는 골짜기를 지칭하는 명칭.

  ▷돌고개 : '삼천유원지' 안에 있는 고개 이름. 언덕에 큰 바위가 있어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square14_red.gif 칠송동(漆松洞)

  ▷진고개 : 칠전리(漆田里)에서 신남(新南)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길 이름.

  ▷회골 : 현재의 신남국민학교 뒷편에 있는 골짜기 이름. 이곳에서 장례용(葬禮用) 회(灰)를 구웠기에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서낭고개 : 칠전리에서 신동면 증리(甑里)쪽으로 나있는 고개길 이름. 과거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기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얼음실 : 현재의 '의암산장' 일대를 지칭한다. 이 일대가 음지(陰地)라서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샘골 : 송암동 2통 4반에 있는 골짜기 이름.

  ▷소래미 : 현재 의암호 주변을 지칭하는 명칭. 과거 이 일대에 좋은 소나무가 군집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르래이 : 현재의 옥수사(玉水寺)가 있는 골짜기 이름.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골통바우 : 송암동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 이름.

  ▷자라우 : 송암리(松巖里)의 토속 명칭.

 

square14_red.gif 사우동(司牛洞)

  ▷마장부락 : 현재의 사우동 1통 1·2반 일대의 마을을 지칭하는 명칭. 원래 이곳에는 '말무덤'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마적리'로 불리우다가, 다시 '마장리'로 음전되어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가라메기 : 현재의 소양중학교 앞쪽의 강안 대지를 지칭하는 명칭.

 

square14_red.gif 우두동(牛頭洞)

  ▷우두벌 : 우두동일대의 평지를 지칭하는 명칭. 조선시대 춘천의 인구 집중지는 이곳이었다.

  ▷가라(加羅)목 : 가라메기의 다른 이름.

  ▷달마지봉 : 우두산(牛頭山) 북쪽 산봉우리. 정상부가 평탄하게 되어 있는데, 과거 이곳 주민들이 이곳에 올라 대보름날 달맞이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소슬뫼 : 우두산(牛頭山)의 다른 이름.

  ▷우뒷소 : 우두산 동쪽 소양강에 있는 소(沼) 명칭. 물살이 상당히 빠르고 수심이 깊다.

  ▷여우고개 : 우두동에서 신북면 율문리(栗文里)로 넘어가는 고개길 이름.

 

square14_red.gif 사농동(司農洞)

  ▷가라목 : '우두동(牛頭洞)'의 해당 항목 참조.

  ▷무른데미 : 북한강변에 있던 돌무더기. 과거 이 지역의 사람들이 이 곳에 쌓여져 있는 돌을 이용해 석전(石戰)을 하였다고 한다. 중도(中島)와 신매리(新梅里)에 적석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적석총유적이 아니었는가 한다.

  ▷옥산포(玉山浦) : 조선시대 이래 춘천의 유명한 나루터이다. 북한강변 위도(蝟島)건너편에 있으며, 현재도 뱃터로 이용되고 있다. 1960년대까지 이곳에 전통적으로 도선(導船) 등의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마산리 : 옥산포 안쪽에 있던 마을 이름. 마산리라는 지명도 '말무덤' 같은 적석(積石)에서 유래한 것 같다.

 

square14_red.gif 신동(新洞)

  ▷옷뫼말 : 현재의 신동 1통 일대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전통시대 이곳에서 옻나무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한다. 한자식 표기로는 '칠산리(漆山里)'라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남양홍씨가 세거하고 있었으나, 18세기경 수성(隨城) 최씨(崔氏)들이 이주하여 와 현재까지 다수 거주하고 있다.

  ▷구리골 : 현재의 신동 2통 일대에 있는 마을 이름. 조선시대 이곳에 구리를 주조하던 가마가 있었다고 하나, 확연하지는 않다. 한국전쟁 후 '안동네'라고 별칭되었다고한다. 이곳에는 영암(靈巖) 박씨(朴氏)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한개마을 : 신동 4통 일대에 있는 마을 이름. 마을 중심부에 준용하천인 '한계천(寒溪川)'이 흐른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로부터 전주이씨들이 세거하고 있는데, 사족(士族)들이다.

  ▷되내 : 현재의 '문화방송' 송신소가 있는 지역 명칭.

 

<춘천백년사>

                

*原典(춘천백년사)에는 면 지역의 지명유래가 상세히 수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옮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