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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약사(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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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05_red.gif 춘천의 옛 이름은 맥국

   선사시대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춘천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이었다. 고대에는 우리 민족을 맥족, 예족 또는 한족이라 불렀으며 나라 이름을 고조선, 부여, 백제, 고구려, 신라 등으로 지칭하면서 예맥이란 이름이 사라져 갔다. 이즈음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춘천의 신북읍 발산리와 천전리 일대에서 부족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던 나라가 맥국(貊國)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에는 아직까지 왕대(王臺), 대궐, 맥뚝(土城)등의 지명이 쓰여지고 있으며, 삼국유사,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에도 맥국이 춘천지역이라 기록되어 있다.

 

circle05_red.gif 신라 때는 우수주 또는 삭주

   춘천은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북방세력이 먼저 미치는 지역이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진출을 통해서 춘천지역은 비로소 우리나라 고대사에 편입된다. 신라 선덕왕 때는 우수주(牛首州) 또는 우두주(牛頭州)로 군주를 두었고, 문무왕 때는 수약주(首若州) 또는 오근내(烏斤乃), 수차약(首次若)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삭주(朔州)로 개칭되었다. 한때는 광해주(光海州)로 통했다. 득오가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에 나오는 화랑 죽지랑은 춘천 출신이며 그 부친은 삭주도독사 술종공이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삭주는 함경남도 안변과 경북의 영주, 봉화에 이르는 대단위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고 삭주의 중심지는 춘천이었다.

 

circle05_red.gif 고려 때는 춘주

   고려 태조 때는 춘주(春州)라고 했다. 성종 때는 삭방도(朔方道)에 속했고 단련사(鍛鍊使)를 두고 안변도호부의 관할에 있었다. 이어 안변도호부에서 분리되어 안양도호부로 승격했고, 춘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을 때는 교주도(交州道)의 안찰사(지금의 도지사) 소재지였다. 교주도는명종 때 춘주도로 불리기도 했다. 춘주는 군사적 전략기지로서 항몽전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circle05_red.gif 조선시대에 춘천

   우수주, 삭주, 광해주, 춘주로 불리던 우리고장이 조선 태종 13년(1413넌)에 비로소 춘천이 되었다. 처음에는 춘천군이었다가 태종 15넌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영조 때는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었다. 춘천도호부는 고종 때 유수군으로 행정구역이 변하면서 강원도의 수부로 승격되는 발전의 시기를 맞았다.

   고종 25넌(1888년) 춘천에 유수부를 설치하고 중앙직할의 별도(別道)를 만들었다. 조정에서 임금이 피난을 할 경우 집무를 볼 수 있는 이궁(離宮)을 건립했다. 그러나 춘천으로 임금이 피난하는 임시 수도로서의 기능은 없었지만 후에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전국을 8도로 구분하던 지방행정 조직은 고종 32년(1895년) 소위 을미개혁 때 개편되어 강원도는 영동, 영서로 나누어졌고 영동은 강릉관찰부에 9군을, 영서는 춘천관찰부에 13군을 두었다. 그러나 이듬해 13도로바뀌면서 강원도가 부활되었고 원주에 있던 관찰사의 감영이 춘천으로옮겨졌다. 1910년 관찰부를 없애고 도청을 두면서 춘천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1919년 도장관이 도지사로 명칭을 바꾸면서 강원도는 21개군 12읍 172개면으로 편성되었다.

 

circle05_red.gif 광복 이후의 춘천

   1946년 6월 1일 미군정 시절 춘천군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었다가1949년 8월 15일 춘천시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후 춘천지역은 북산면 추전리 교량으로 38선이 통과하면서 한때 분단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45넌 9월 소련군이 춘천의 중심부까지 들어와 행정권을 요구하다 물러가기도 했고 뒤이어 초대 군정관이 부임하고 미군이주둔하기도 했다.

 1992년 춘성군이 춘천군으로 개칭되었고 1995년 1월 1일자로 춘천시와 춘천군이 통합하여 지방자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춘천」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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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05_red.gif 현대의 춘천

   1992년 2월 1일 법률 제4417호(1991. 12. 14 공포)로 춘성군으로 개편하고, 1994년 8월 27일 시 조례 제 1861호로 후평 2,3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1월 1일 경기도 남양주시등 33개 도·농 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법률 제4774호(1994. 8. 3 공포)에 의하여 춘천시와 춘천군이 통합, 도·농 복합형태의 춘천시가 되었다.

 1998년 3월 1일 시 조례 제295호(1998, 2, 26)로 동면 상걸출장소가 폐지되었으며, 1998년 10월 12일 시 조례 제310호(1998. 10. 12)로 5천미만의 동사무소가 통폐합되었다. 내용으로는 중앙동, 소낙동, 소양동이 소양동으로, 근화동, 호반동이 근화동으로, 약사동, 죽림동이 약사명동으로, 온의동, 삼천동, 칠송동이 강남동으로, 사우동, 우두동, 사농동, 신동이 신사우동으로 통합되었으며, 동조례에 의거 서면 덕두원출장소, 사북면 용산출장소, 북산면 조교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서면 농협 옥상에서 바라본 봉의산과 춘천시(2005. 9. 8.)